|
‘국격과 국뽕’ 이 두 표현엔 현격한 차이가 있다. 전자가 비교우위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면, 후자는 그 중심에 일종의 ‘부심’이 자리잡고 있다. 사실 단어 쓰임새 하나로도 세계관의 변화과정을 엿볼 수 있다. 두 표현 간엔 타자의 시선에 의해 규정되기보다는 자기충족감이 중요한 새로운 세대 출현이 자리 잡고 있다. 뭔가 분명 자긍심 같은 것이 있는데, 아직은 뻔뻔하지 못한, 못내 부끄러운 단계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국격을 논할 때마다 곧잘 최초, 최고와 같은 계량화된 순위를 들이밀기 일수였다. 그러나 자긍심과 같은 심리상태는 수치화하기 어려운, 스스로 넘쳐나는 기운이다. 그것은 마치 공부가 잘된 날 도서관을 나서는 가난한 고학생의 발걸음 같은 것이기도 하며, 교통사고로 차량에 끼여 꼼작할 수 없는 이를 힘을 모아 살리고 난 후 묵묵히 가던 길을 재촉하는 이들의 손마디에서 떨리는 전율 같은 것이다.
사실 우린 오랜 세월, 타인의 시선을 잣대로 자신을 줄 세워왔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시나브로 우리 젊은이들의 기운이 널리 세계인들의 흥을 돋우고, 문화적으로 선도하는 것을 목도하게 됐다. 그럼에도 지식인들은 겸양인 듯 ‘국뽕’이라며 스스로를 낮추거나, 근엄한 척 경계해야할 무엇으로 꾸짖어왔다. 이는 우리 내면의 영토에 뿌리 깊은 식민 정치가 여태껏 발휘되고 있다는 방증이다.
지난 11일은 상해 임시정부 수립일이었다. 대한민국이 건국된 지, 만으로 백년을 채우고도 일 년이 지났다. 결코 짧지 않은 기나긴 시간이다. 그 역사의 굴곡, 마디마디에 모진 세월을 견뎌온 우리네 백성들이 있었기 때문에라도 백주년 행사는 왁자지껄했어야 마땅했다. 그런데 그러지 못했다. 국론분열로 인해 임시정부 수립일을 대한민국 건국일로 지정해야한다는 목소리는 제대로 전해지지 못했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수립일을 건국절로 주장하는 이들은 ‘그날이야말로 대한민국이 국가로 인정받은 날’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누가 누구로부터 인정받기 이전에 스스로 일어선 날을 기념함이 옳은 일이다.
최근 들어 우리는 외신의 주목을 받고 있다. 촛불혁명을 무혈로 이끌고 마침내 정권을 바꾼 기억, 문화 분야에서의 약진 등 스스로 자부심이 들만도 하다. 코로나19 사태만 하더라도 사재기와 같은 동요나 국지적 소요사태 없이 수습해나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스스로 자긍심을 가질 만하다.
새삼스럽게도 임시정부 수장으로서 누구보다도 대한민국의 밝은 미래를 꿈꿔왔던 백범 김구선생을 다시 생각해 볼 때란 생각이 든다. 부강의 측면에서 다른 나라와 비교우의에 서지 않고 자족하며 인류공영에 이바지하는 대한민국, 그러나 문화적으로 스스로 떨쳐 일어나 타국의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나라. 순위가 필요 없는 자체로서 아름다운 나라를 만드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임을 직시해야 할 때다. 마침 내일이 선거일이다.
/이황석 문화평론가·한림대 교수(영화영상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