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 터지자 학업 중단 해병대 자원 입대, 휴전 때까지 근무
30년 상원의원 생활, 한국전·한인이민 관련 결의안 제안
수교훈장 광화장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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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너 전 의원은 1927년 워싱턴 D.C.에서 태어나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인 17세 때 해군에 입대해 미 시카고에서 근무했다가 전역했으며 1946년 버지니아주 워싱턴앤드리대학에 입학, 1949년 공학 학사학위를 받고 졸업한 뒤 버지니아대 로스쿨로 진학했다.
그러나 이듬해 한국전쟁이 터지자 학업을 중단하고 해병대에 자원 입대해 통신 장교로 복무하며 휴전협정이 체결된 1953년 7월까지 전장에서 싸웠고, 대위로 제대했다. 그리고 복학해 같은 해 졸업했다.
그는 임기 6년의 5선 상원의원으로 1979년부터 2009년까지 30년간 군사위원장 등을 지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워너 전 의원이 1976년 미국 독립 200주년 축하 행사 계획을 지원했고, 군사 관련 활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근면·합의 형성·독립성으로 공화·민주 양당으로부터 존경을 받았고, 버지니아주의 많은 무당파와 민주당원들이 그에게 투표했다며 버지니아주 사상 2번째로 길게 상원의원직을 수행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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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에는 2003년 미주 한인 이민 100주년을 기념하고 미 대통령이 이 해를 ‘한국 이민의 해’로 선포하도록 촉구하는 결의안을 제출했다.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2009년 한국 정부로부터 수교훈장 광화장을 받았다.
워너 전 의원은 할리우드 여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6번째 남편으로 1976년부터 1982년까지 결혼 생활을 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성명을 발표하고 고인을 추모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17세 때 해군 입대에서부터 한국전쟁에서의 해병대 복무, 해군장관 시절, 상원에서의 5선까지 워너는 비범한 복무와 성취의 삶을 살았다”며 “나는 30년 동안 존과 함께 상원의원으로 일할 수 있는 특권을 누렸는데 내가 아는 존 워너는 그의 양심과 우리의 헌법에 의해 인도됐다”고 말했다.
이어 “심지어 우리가 정책 결과에 대해 의견이 다를 때도 나는 항상 존의 결정이 그의 가치에 의해 내려졌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며 2020년 대선에서 당의 경계를 넘어 자신을 지지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고인은 군과 상원 봉직을 통해 미국호를 인도하는 것을 능숙하게 도왔다며 “오늘 우리의 마음과 기도는 그의 가족과 함께한다”고 추모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