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재 중심 법당으로 쓰고 있는 응진전은 조선 중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지붕 마루 끝에 세우는 암막새 기와인 망와에 기록된 글을 통해 인조(재위 1623∼1649) 대인 1647년에 기와 공사를 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1827년과 1946년 사찰에 큰불이 나 대웅전을 비롯한 전각 대부분이 불에 탔으나, 응진전은 중심 영역에서 벗어나 있어 화를 면했고 이후 불당 기능을 해왔다.
광흥사 응진전은 건축사적으로도 가치가 크다는 평가를 받는다. 건물은 앞면 5칸, 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 형태로 구성돼 있다. 기둥머리에 나무를 짜 맞춰 지붕의 무게를 받치는 구조부재를 뜻하는 공포는 화려하게 조성했으며, 꽃문양이 그려진 판재인 화반이 장식돼 있다.
국가유산청은 "응진전의 공포는 조선 전기 양식을 계승해 중기와 후기에 이르기까지 불전(佛殿·불당) 건축 양식의 변화를 시기적으로 잘 보여주는 형태"라고 설명했다.
응진전에 봉안된 소조석가여래오존상 및 16나한상 일괄은 16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불상으로, 총 42구에 달한다. 다른 불상과 비교해 그 수가 많고 배치가 특이해 학술적 가치도 크다.
국가유산청은 예고 기간 30일 동안 각계 의견을 검토한 뒤, 문화유산위원회 심의를 거쳐 광흥사 응진전의 보물 지정 여부를 확정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