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완수사권' 피해자들 위한 최소한의 '안전망'
경찰 수사 환경 개선 논의 필요성도 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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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 집단 성폭행 사건'의 피해자 정연수씨(가명)와 '부산 돌려차기 사건' 피해자 김진주씨(가명)는 12일 한국피해자학회와 전국범죄피해자지원연합회가 주최한 '범죄피해자가 바라는 검찰개혁 세미나'에서 이같이 호소했다. 세미나에 함께 자리한 전문가·법조인 역시 정부·여당이 추진 중인 검찰개혁안에 대해 우려 섞인 지적을 쏟아냈다.
'세종시 집단 성폭행 사건' 피해자 정씨는 사건 당시 경찰의 부실한 수사를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정씨는 "경찰의 부실한 수사 끝에 공소시효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불송치 결정이 내려졌다.검사가 신속히 재수사를 요청하고 피의자들의 전과 등을 확인한 뒤 출국금지·구속하지 않았다면 피의자들은 분명 도피하거나 직접 보복했을 것"이라며 "수사권을 경찰에게 넘기는 방향으로 개혁이 이뤄지고 있지만, 지금의 경찰 조직은 전문성도, 책임성도, 감수성도 충분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검찰개혁이 정치적 싸움이 아닌 국민을 위하려면 기계적으로 수사권의 이동만을 논할 것이 아니라 그 권한을 행사하는 구조와 시스템이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논의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호소했다.
'부산 돌려차기 사건' 역시 검찰의 보완수사권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경찰은 이 사건을 단순 중상해 사건으로 검찰 송치했으나 검찰의 보완수사와 재수사를 통해 강간살인미수로 공소장을 변경해 원심보다 중한 형을 이끌어 냈다. 김씨는 "정치에는 무관심하지만, 검찰개혁의 논의에서 '범죄 피해자'가 빠진 것이 화가 난다. 나는 국민에 해당하는 게 맞을까 하는 고민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범죄피해자들과 누구보다 가까이 있는 전문가와 법조인들도 검찰개혁 방향성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이들은 검찰의 보완수사권의 경우 범죄피해자들을 위한 최소한의 '안전망'임을 강조했다.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 등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ReSET(리셋)의 정책법률연구팀 소속 유영 활동가는 "초동 수사 단계부터 신속한 탐지·채증·신원파악이 이뤄져야 하지만, 현실은 불송치 비율이 높고 사건 상당수가 증거 불충분으로 종결된다"며 "바로 이 지점에서 검찰의 보완수사권이 피해자 보호를 위한 최소한의 안전망으로 기능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보완수사 요구와 영장 보강은 경찰 초동수사의 빈틈을 메우는 중요한 통로"라고 말했다.
성폭력 피해자들을 돕는 활동가 '연대자 D'는 "검경수사권 조정 이후 수사는 부실해졌고 검경 모두 책임을 회피했다"며 "그나마 검찰 보완수사를 통해 가해자 처벌이 제대로 이뤄진 사건들이 있다. 경찰에 수사 종결까지 맡기면 법리 해석이 제대로 안 됐을 경우 누가 책임지느냐"고 꼬집었다.
법무법인 혜명의 안지희 변호사는 검찰 보안수사권 폐지 이전에 경찰 수사 역량 강화가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 변호사는 "성폭력 사건이나 젠더 폭력 피해 사건은 범행을 부인하고 직접 증거가 없는 경우가 많아 보완 수사가 이뤄질 가능성이 다른 범죄보다 높을 수밖에 없다"며 "수사 통제권을 없애는 대안으로 경찰 징계라는 징벌적 수단을 내세우는 것은 비민주적이고 폭력적"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성폭력 사건 등 민생 사건에 대한 수사 영역은 바닥으로 떨어질 것"이라며 "지금은 보완수사권 폐지를 논할 때가 아니라 경찰의 수사 환경 개선을 논의해야 할 시점"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