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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한국미술사에서 저평가된 근대기 작가들을 발굴, 재조명하는 시리즈 ‘근대미술가의 재발견1 : 절필시대’전을 통해 소개된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김예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는 29일 덕수궁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정종여는 이십대의 젊은 나이에 전통적인 불화 양식을 따르지 않고 빠른 필치로 자유롭게 그렸다”며 “옅은 채색, 리듬감 넘치는 필선, 인간미가 넘치는 부처 얼굴 등 파격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정종여는 해인사에서 생활하다가 해인사 스님의 후원으로 일본에 건너가 서양화와 일본화를 배웠다. 그 사이 한국을 오가며 이상범 문하에서 한국화도 익혔다. 일본화와 한국화 양식을 적절히 섞어 자신만의 화풍을 만들어냈다. 그는 큰 가방을 메고 전국으로 스케치 여행을 다녔다. ‘한라에서 백두까지’ 전 국토를 화폭에 담고자 했지만 분단으로 그 꿈을 이루지 못했다. 1940년대에 왕성하게 활동했지만 1950년 월북을 기점으로 남한 미술사에서 삭제됐다.
전시장에 걸린 정종여의 작품 중 1948년작 ‘지리산조운도’는 길이 4m에 달하는 대작으로 감탄을 자아낸다. 구름이 가득한 지리산의 아침 풍경을 운치 있게 표현했다. 하지만 정종여는 친일 이력 등으로 아직까지 연구가 조심스러운 상황이다.
이번 전시에는 정종여를 비롯해 채색화가 정찬영(1906∼1988)과 백윤문(1906∼1979), 월북화가 임군홍(1912∼1979), 한국 현대미술의 개척자 이규상(1918∼1967)과 정규(1923∼1971)의 작품들이 소개된다.
김 학예연구사는 “이들은 일제강점기, 해방기, 한국전쟁 시기, 전후 복구기로 이어지는 격동의 시대에 의미 있는 작품활동을 보여준 작가들”이라며 “자의, 타의에 의해 절필할 수밖에 없었던 화가들의 작품을 모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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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당시 미술계 최고상인 창덕궁상을 수상한 정찬영은 도봉섭과 ‘결혼 후에도 작품활동을 한다’는 조건으로 결혼했다. 하지만 1940년 둘째 아들을 병으로 잃고 그 충격으로 절필했다. 그러다 1940년대 도봉섭이 한국의 유독식물에 대한 연구를 계획하자, 이를 돕기 위해 식물세밀화를 그렸다.
김 학예연구사는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이 2000년 발표한 논문 ‘일제하 여류채색화의 선구’가 발표되기 전까지는 주목받지 못한 화가”라며 “자녀들도 ‘우리 어머니가 이렇게 유명한 화가였냐’고 할 정도로 알려지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백윤문의 남성 생활을 소재로 한 풍속화도 주목할 만하다. 김은호의 화풍을 이어받았지만 김은호와는 차별화된 남성적이고 강건한 회화세계를 구축한 작가다.
김 학예연구사는 “전통화법을 계승하면서도 선명한 채색기법, 부드러운 필법 등 자유롭고 운치 높은 화풍을 선보여 동양화단에서 다시 평가하고 주목해야 할 작가”라고 소개했다.
일체의 형상이 배제된 극도로 간결한 그림들을 그리며 당대에는 주목받지 못한 화가 이규상, 판화·유화·도자기·건축 분야를 아우른 종합 예술인 정규 등의 작품도 수준 높은 예술세계를 보여준다.
윤 관장은 “이번 전시를 통해 근대미술 연구와 전시로 특화된 덕수궁관 역할이 한층 강화될 걸로 기대한다”며 “현재 국립현대미술관이 추진 중인 한국미술사 통사 정립 사업에도 일익을 담당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전시는 30일부터 9월 15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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