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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곁으로 간 이희호 여사는 누구인가...1세대 한국 여성운동가·여성지식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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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원 기자

승인 : 2019. 06. 11.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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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김대중 전 대통령 평생 '동반자' 이희호 여사
87년 12월 평민당 김대중 후보의 제주 유세에서 김후보의 부인인 이희호 여사가 지원 연설을 하며 여성 유권자들의 지지를 호소하는 모습./연합
10일 향년 97세로 별세한 고(故) 이희호 여사는 생전 자신이 “여성의 인권을 존중하고 높이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 사람으로 기억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 여사는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이기 이전에 평생을 여성 인권 신장을 위해 힘쓴 여성운동가다. 이화고등여학교와 이화여자전문학교, 서울대 사범대를 거쳐 미국 유학까지 다녀온 그는 그 시절 여성으로선 매우 드문 지식인이기도 하다.

이 여사는 이른바 여성운동 ‘1세대’로 활동했다. 1950년 대한여자청년단 결성과 1952년 여성문제연구원(현 여성문제연구호) 창립에 앞장섰다. 여성문제연구원에서는 상임간사와 회장을 역임하며 여성노동자 근로환경과 여성 정치의식 등을 조사하고 ‘요정 정치’ 반대 운동을 펼쳤다.

1959년에는 대한YWCA연합회 총무를 맡아 ‘축첩자를 국회에 보내지 말자’는 캠페인을 벌였다. YWCA를 통해 펼친 남녀차별적 법조항을 고치기 위한 운동은 1989년 가족법 개정과 호주제 폐지 등의 성과로 이어졌다는 평가가 있다.

당시 이 여사와 함께 여성운동 1세대로 불린 이들로는 한국 최초의 여성 변호사인 이태영 박사, 여성교육자 황신덕 여사, 헌정 사상 첫 여성 당 대표(민주당)가 된 박순천 여사 등이 있다.

이 여사는 1961년 한국여성단체협의회 이사를 역임하고 1999년 한국여성재단 출범에도 관여하는 등 청와대에 들어가기 전 반백년 가까운 시간을 여성 운동에 힘썼다.

故김대중 전 대통령 옆 이희호 여사<YONHAP NO-0093>
2000년 12월 11일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가 숙소인 그랜드호텔 발코니에서 노벨평화상 수상을 축하하는 오슬로시민들에게 손을 맞잡고 답례인사를 하는 모습./연합

이 여사가 영부인이 된 뒤에는 여성 인권 신장을 위한 노력이 정부 정책과 인사 등에 나타났다. 당시 국민의 정부는 적극적인 여성 정책을 펼쳤다. 여성부가 신설되고 부처마다 여성정책담당관실이 설치됐다.

여성의 공직 진출도 늘어났다. 한명숙 전 총리와 신낙균 전 의원을 포함해 다수의 여성 장관이 탄생했다. 또 김 전 대통령 취임 이전 50년 간 1명밖에 없던 청와대 여성 비서관이 국민의 정부 5년 동안 10명으로 늘었다.

여성 보호와 남녀차별 해소를 위한 법률 제정·개정도 활발했다. 1998년에는 가정폭력방지법이, 1999년에는 남녀차별금지법이 각각 시행되기도 했다.

이런 배경에는 이화여대 출신 재야인사 등을 중심으로 여성계 출신 정치인들과 널리 교류한 이 여사가 있었다는 평가다. 이 여사와 교류했던 여성 인사들로는 한 전 총리와 장상 전 총리 서리, 박영숙 전 평민당 총재 등이 있다. 또 신 전 의원, 윤후정 전 이화여대 명예총장, 이미경 전 의원 등과도 인연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장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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